新世紀末 @_R_U_HAPPY
new generation roman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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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루는 것은 기억일까요?
그렇다면, 당신 앞의 저장장치도 야츠모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신식상조서비스:기억이전하드
W. 갯강구
KPC 黒粋奴藻
PC 大海原九
무심코 현관 문을 열어보았을 뿐입니다.
시킨 적 없는 택배가 문짝에 턱 하고 걸려버렸네요.
그러나 수신인의 이름과 주소는 분명 당신의 것입니다.

大海原九

...뭐야, 이게?

 

달리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역시 이치지쿠의 앞으로 온 물건이 맞는 것 같은데...

大海原九

(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보다가 상자를 한번 들어본다. 들 수 있는 무게인지 확인부터 한 번 해 보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나서야 가져와서 테이프를 뜯었다.)
뭐, 위험한 거라면 이거보단 무거운 법이지.

 

택배를 적당한 곳에 올려놓고, 개봉용 칼을 들어 박스의 테이프를 가릅니다.
매끄럽게 지나간 칼날은 손쉽게 택배의 입을 엽니다.
그 안에는... 단번에 알 수 있군요. 외장하드와 엽서 한 장입니다.

大海原九

더 모르겠네에... (엽서에 뭔가 설명이 있나 싶어 들어서 살펴본다.)

 

'본사의 서비스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야츠모 님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단단하고 두꺼운 미색 종이에 고급스럽게 인쇄된 것이 초대장 같다는 감상을 줍니다.

大海原九

...
시킨 적 없는데 말이지?
(하드를 들어본다.)

 

평범한 외장하드입니다. 외관상으로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컴퓨터에 연결할 수 있는 선이 동봉되어 있습니다.
이치지쿠, 지능 판정

大海原九

cc<=85 지능 (1D100<=8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4 > 94 > 실패

 

여전히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야... 야츠모는 죽었잖아요?
그의 노트북이나 휴대폰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자료가 있었던 걸까요?

大海原九

(의미를 모르겠군. 엽서를 보다가 먼저 우린 차만 찻잔에 따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한 몇 십분쯤 외면하다가, 이걸 치우고 싶다면 아무튼 자기밖에 없는데다가, 그게 뭐든 궁금하면 건드려 보고 마는 게 본인이라는 걸 알아차리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이치지쿠는 pc에 하드를 연결해 보기로 했다.)

 

일단 당신에게로 온 것은 확실하니, 외장하드를 열어보도록 할까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수신인의 도리를 다 한 셈일테니 말이죠.
그렇게 PC를 켜고 외장하드를 연결합니다.
외장하드의 상단에 불빛이 들어오고, 낮게 진동이 울립니다.
그 진동음이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은 역시 기분탓이겠죠.
컴퓨터에 연결된 외장하드가 프로그램에 의해 한 번 스캔되고, 곧장 파일 탐색기가 열립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黒粋奴藻

...누구십니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야츠모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大海原九

... (턱을 괴고 불쾌하다는 듯이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이치지쿠, 지능 판정

大海原九

cc<=85 지능 (1D100<=8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5 > 85 > 보통 성공

 

아, 뒤늦게나마 기억났습니다.
요즈음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는 상조 서비스 중에 하나였죠.
생전 고인의 기억을 데이터화해서 외장 하드에 담아준다는 '기억이전하드'서비스인 것 같습니다.

大海原九

...시키지 않은 건 둘째치고...... (책상 위를 치던 손가락이 멈춘다.)
'데이터화' 되었다더니 왜 아는 게 없지?
자각은 있어?

黒粋奴藻

자각...이라고 묻는다면, 일단은, 죽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 것 같고. 네.
...자신과 관련된 기억은 전부 흐릿합니다.

大海原九

그러니까 기껏 무언가를 잊을 일 없는 데이터가 되었는데도 보람없이 바보가 되었다?
야츠모 군, 바보야?

黒粋奴藻

이름이 '바보'는 아니겠죠? 야츠모입니까?

大海原九

(잠깐 고민했다.)

黒粋奴藻

...?

大海原九

... ... 뭐어, 그렇지?
그것도 기억에 없는 모양이야.

黒粋奴藻

풀네임이 어떻게 됩니까?

大海原九

쿠로이키 야츠모. 한자도 말해줘야 하나? (마우스를 움직여 파일 목록을 훑는다.)

黒粋奴藻

음... 아니, 조금 알 것도 같은데요. 그런 이름이었죠.

大海原九

(어색한 말투에 돌연 생각한다. '조악하군...')

 

하드 내부에 접속하니 '쿠로이키 야츠모'라고 적힌 파일 아래로, 여러 세부 파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겉'이라는 바보같은 파일이 가장 위에 있고, '추억', '목표'같은 폴더라던가, '악몽'이라는 이름의 내용이 짐작 가는 것도 하나 보입니다.
어째 이름 없는 잠금 폴더 하나도 구석에 있습니다.

大海原九

(불쾌함도 잠시, 이치지쿠의 시선이 이름없는 폴더로 고정된다.)
...헤에, 이름이 없네, 여긴.
(당연하게도 그 파일부터 열어본다...)

黒粋奴藻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바로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닙니다. 패스워드가 걸려있습니다.
힌트는... 없네요. 뭐야? 친절하지 못한 녀석.

大海原九

너 말야, 죽었다...는 건 어쩐지 기억하고 있다고 했지?
그럼 지금 무슨 상태인지도 아나? (턱 괸 채 무언가 생각 중이다.)

 

형상 없는 목소리는 담담한 투로 흘러나옵니다.

黒粋奴藻

'데이터화'라고 했으니까, 그런 상태겠거니 하는데요. 몸은 없는 모양이고. 움직일 수 없는 건 답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무언가의 사후 서비스라고 이해했습니다.

大海原九

... ...
막되먹은 서비스구나, 이래서야 불쾌할 뿐이지 않나. (짧게 웃는다.)
(하지만 딱히 알려주진 않는다.) 그래, 그래서, 네가 들어 있는 외장 하드의 파일을 보고 있거든?

黒粋奴藻

예...

大海原九

비밀번호가 걸려 있네...힌트도 없고. 너무 불편한 거 아냐? 뭐라도 떠오르는 거 없니?

黒粋奴藻

떠오르는 거라고 해도, 당장은... 직전에 들은 이름이랑 몇 가지 정도입니다.
도움이 되려면... ... ...
...아, 난 어떻게 생겼지? 저 뭐 하는 사람인가요? (...)

大海原九

やなこった...
거기서부터 해야 한다고?
만약 내가 '넌 사실 천재 요리사였어' 라고 한다면?

黒粋奴藻

잘 모르겠습니다...?

大海原九

...뭐, 좋아. 아예 연관없는 건 안 된다 이거지.
굉장히 잘 만들어졌구나. (외장 하드 들고 빙 돌려본다.)
일단 뭐어, '야츠모 군'은 말이지. 전엔 살인 청부업자였고, 최근은 백수였다고 할까...
패션 센스는 괴랄하지.
하와이 셔츠에 안쪽엔 붕대 감고 선글라스라니 말이 되야 말야.

黒粋奴藻

...
어째서?!

大海原九

흉터도 여기저기 나 있고...아하, 어째서? 그걸 나한테 물어도 말이지.
'그게 더 친근하지 않냐' 고 하던데, 무슨. 그냥 수상쩍은 인간이야.

黒粋奴藻

하와이 셔츠에 붕대, 선글라스를 쓴 전직 살인 청부업자 입니까? 대체 왜...?

大海原九

받아들여, 네 취향이 그렇다는 걸. (...)
정확히는 네 원본 말이지?
그래서, 야츠모 B군. 뭔가 떠오르는 건 없나? ('겉'이라는 이름의 파일을 먼저 눌러본다.)

黒粋奴藻

B군이라니, 그건 좀...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파일 내용물을 확인하기에 앞서, 모니터에 잠시 노이즈가 일어나더니 사람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이치지쿠가 알던 야츠모의 모습이 맞기는 한데, 어째 조금 어색하네요.
'겉' 파일 안에는 '외형'과 '직업'이라는 세부 항목이 들어있습니다.

黒粋奴藻

직접 확인하니 더 괴랄한 차림인데요. 이거 맞아?
...실은 조금 괜찮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지만.

大海原九

네가 그렇게 입고 다닌 걸 어떡하겠어, B군.
... ...
(잠시 마우스에서 손을 데고 깍지낀 채 의자에 기댄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서는 백지이다.
좋아, 세상에 난 것은 잘못이 없지. ('외형' 부터 눌러본다.)

黒粋奴藻

꼭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은데, 아니죠?

大海原九

들렸어? 싫다아, 너무 상처받진 말아 줄래?

 

잘 아는 그 모습이 텍스트로 새겨져 있습니다. 키, 몸무게 등의 체형부터 시작해 흉터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서술되었네요.
짧은 사견이 함께합니다. '흉터는 지우는 편이 낫나? 귀찮은데' 라던가, '상처는 완전 아물어가는 중이니 슬슬 붕대 없어도 될 것 같다' 라던가...
'옷 가지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마~'
... 네.

大海原九

(그런 한편 이 순간, 소소하게 '이런 생각도 했다고' 라는 놀라움에 약간 젖어있는 중.)

黒粋奴藻

(그러는 와중에도...) 당신이 하는 말은 전부 들립니다... ...앗. 이름이?

大海原九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 (이번엔 마우스를 움직여 '직업'을 누른다.) '선생님'이라고 불러.

黒粋奴藻

선생님?... ...
이름이 낫지 않나?

大海原九

(잠깐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럼 불러 보던가.

黒粋奴藻

... ... ... ... ...
오오우나바라 씨.

大海原九

그래, 야츠모 B군.

黒粋奴藻

그 호칭은 역시 별로야...

大海原九

너에게도 혼자 온전하고 싶다는 감각이 있나?

 

'직업' 파일에는 세 개의 직업이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쓰여있고, 두 번째 직업으로 들어간 '청부업자' 아래로는 일하기 시작한 년도, 관둔 년도가 나란히 적혀있습니다. 설명도 존재합니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익숙해지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죄악감을 의식하는 순간 무엇보다 어려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뭐든 생각을 적게 하는 편이 이득.'
어떤 생각으로 임했는지 정도는 알 것도 같고요.

大海原九

(첫번째랑 세번째는 뭐지? 연달아 눌러본다.)

 

1. 심부름꾼
- 배달이라고 던져주는 것들은 아마 대부분 마약. 가끔 이상한 공구도 섞여있다. 별 관심은 없으니 빠르게 전달만 마치면 됨. 생각보다 할만함.
3. 백수
- 엄연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애써 유지하는 중이라고.
- 그리고 우선 경호 비슷한 것도 하는 중이고.

大海原九

헤에, 정말 의외로 생각을 많이 했네. (하며 어깨를 으쓱이다가 곧 마지막 줄을 읽고 이리저리 열어뒀던 '직업' 파일들을 한번에 끈다.)
자, 그럼 무슨 호칭이 좋을까, 야츠모 B군?

黒粋奴藻

이름이 좋다니까.

大海原九

원본이 단세포였으니까 아메바가 좋아? (무시했다.)

黒粋奴藻

어이.
이럴거면 왜 물어봤습니까?

大海原九

기적적으로 네가 생각한 호칭과 내가 생각한 호칭이 맞을 수도 있잖아, 소년.
하여간 '야츠모 군' 은 아니네. 35점이야.
얏층이라고라도 해줄까?

黒粋奴藻

...됐네요, 그냥 마음대로 부르시던지.
35점은 또 뭐야?

大海原九

네가 '야츠모 군'이라고 할만하기에 맞는지의 점수. ('추억' 항목으로 커서가 움직인다.)

黒粋奴藻

어디가 얼마나 틀렸는지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잖아?

大海原九

... (잠시 마우스 위에서 또 손가락만 톡톡.)
말투가 꽤나 닮아가고 있네... ...

 

각 년도의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 위주로 정리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2008년도의 '히마와리 나나' 항목 아래로는 한동안 텅텅 비어있으나 2011년도에 들어서자 기록된 사건이 늘어 꽤나 빼곡합니다.
2011년의 가장 밑에는 '새해'라는 항목이 존재합니다.

黒粋奴藻

그거 하나는 다행이네. 결국 오답정정은 해주지도 않았지만...

大海原九

오답정정이 필요해?

黒粋奴藻

필요 없는 수준이라는 뜻?

大海原九

너는 별개의 존재라는 말이야.

黒粋奴藻

...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그 말대로면 나는 지금 '원본'의 기억을 학습하는 셈이 되는데. 싫지 않나?

大海原九

(여기서 이치지쿠는 '태도까지 비슷해지고 있군' 하고 떠올려 잠시 마우스를 놓는다.)
인간이 뭐라고 생각해, 얏층?

黒粋奴藻

(뺨 긁적인다.) 너.
...살아서 움직이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아닌가?

大海原九

여기에는 이상한 종이 많거든...

黒粋奴藻

'여기' 라면?

大海原九

이케부쿠로. 일본에 있는 도시 말이야, 도쿄의.
말하지 못하거나, 먹지 못하거나, 살아있지는 않은 것도 인간 취급해야 하는 열린 문의 도시랄까?

黒粋奴藻

아, 기억났어. 그런 곳이었지. 비일상이 난무하는 곳.

大海原九

즉 회화가 성립하고 그걸 증명할 만한 의지나 사고가 있다면 어떤 모습이라도 인간이라 할 여지는 있다, 고 해 둘까.
그리고 자식은 처음엔 특히 부모 뜻을 따르게 되어 있고...
네 탄생 목적은 '쿠로이키 야츠모'의 복원이니 거기에 화를 내는 건 가당치도 않지. 100점이 되면 칭찬할 마음도 있는데, 나는?

黒粋奴藻

아아, 칭찬... 하지만 처음에 들은 말들을 떠올려보면, 너는 딱히 날 받으려고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던데.
멋대로 일어난 복원이라면 화낼 법도 하지 않은가 싶어서.

大海原九

... (고개 잠깐 기울인다.)
...나는 지금까지 화내본 적이 없어. (그제야 '히마와리 나나' 를 열어본다.)

黒粋奴藻

...아까까지의 그게 화냈던 게 아니었다고?

 

'히마와리 나나'라는 인물을 처음 만난 시각, 상황 등이 3자의 시선으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파일에서도 짧은 일기 형식의 사견 역시 건재합니다.
모아두면 러브레터 한 장이라도 나올 것 같은, 꽤나 우스운 표현들 뿐이지만요.

大海原九

(무시하고 일기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게 뭐냐는 듯 고개만 기울이다가... 점점 표정이 볼만해집니다.

黒粋奴藻

잠...깐, 뭘 읽는 거지?

大海原九

네 세기의 첫사랑. (다시 마저 읽어준다.)

黒粋奴藻

... (이어서 당황을 넘어 반쯤 침울해하는 표정이...)
역시 화풀이잖아...
첫사랑은 항상 뒷맛이 좋지 못한 법이지. 덕분에 기분만 죽쒔군.

大海原九

하지만 그런 첫사랑이라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던가, 너희는? (아하하하. 문득 모니터 너머의 야츠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웃는다.)

黒粋奴藻

네 성격이 얼마나 나빴는지도 같이 떠오른 참이다. 그렇게 웃겨?

大海原九

아하하, 그렇게 웃기냐고?
아니, 별로. (갑자기 웃음이 뚝 끊긴다.) 네가 좀 짜증나는 소릴 하길래 읽어준 것 뿐이야.
나 정도면 분명 상냥할 텐데? (잠시 스크롤을 아래로 쭉쭉 내렸다가, 다시 돌아와 2011년의 '새해'만 눌러본다.)

黒粋奴藻

'상냥하다'는 말이 언제 쓰이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닐 텐데. 넌 직업이 뭐였지?

 

아, 익숙한 내용이 반겨주네요. 바로 그 '새해 옥상 다이브 사건'입니다. 다만, 정말 주요 사건 파일마냥 명칭만 적혀있고 세부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大海原九

상냥하지 않나, 이 정도면. (택도 없음을 알고 하는 소리다.) 소설가야, '얏층'.
(잠시 그 창을 가만히 보다가 '목표'를 눌러본다.)

 

이치지쿠라면 익히 들었을지도 모르는 문장 몇 줄이 보입니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
그 사람의 사연이 뭐든, 무슨 죄를 지었든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살리자.

黒粋奴藻

소설가였던가... 확실히 그랬던 것도 같고.
그, 떠오르는 기억들로 어림짐작은 했는데 역시 확신이 필요하달까. 확답? 정답지? 그런 거. 어쩌다 청부업자를 관뒀지?

大海原九

어째서라고 해도 말이지...
아까 들려준 러브레터 만으로는 부족했니?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났을 거 아냐, 얏층.

黒粋奴藻

'정말 그것 뿐인지'가 궁금할 수도 있잖아?

大海原九

그건 꽤나 안타까웠겠지. 놀랍게도... (휠을 돌려 '겉'의 폴더명을 빤히 보다 만다.) 사람을 죽이는 건 그렇게 내키진 않았다는 생각도 있던 모양이지만.
너는 기본적으론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黒粋奴藻

욕은 아니지?

大海原九

세상 만사, 모든 일엔 장단점이 있는 법.

黒粋奴藻

흐으으으음.

大海原九

적어도 내가 알고 여기 적혀있는 것들로는 그게 전부라고 해 두지.

黒粋奴藻

(미심쩍다는 낯) 생각해보면... (표정 풀며) 뭐, 그렇지.
계기는 꽤 확실한 편이구만.

大海原九

뭘까나아, 이 의심스러운 목소리? 난 정말이지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자아, 여기 네 '악몽' 도 있네. (달칵.)

黒粋奴藻

기본적으로 네 설명을 바탕으로 기억이 살아나는 것 같고...그래도 나는 네가 뭘 보고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
...악몽? 싫은 예감만 든다?

 

짐작했던 그대로의 문서가 하나. '추억'에서 봤던 '히마와리 나나'와 같은 이름의 파일입니다.
그리고 '새해 옥상 다이브'도 하나.

大海原九

(하지만 이렇게 섬세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黒粋奴藻

(대충 파일 창이 띄워져있을 위치 힐끔거린다.)

大海原九

그러니까아... (목록 두 개 이름을 번갈아 보다가 짐짓 상냥해진 목소리.) 뭐, 악몽 같은 건 굳이 알고 싶지 않으려나? (하며 '나나'부터 눌러본다.)

黒粋奴藻

(짐짓...무게잡는 투)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 반. 하지만 날 이루는 뭔가...라는 거잖냐. 어떻게 그걸 무시하냐고.
그래도 너 혼자 보는 건 좀?

 

다른 파일들과는 구성이 조금 다릅니다. 자세한 설명은 한 줄도 없으며 아마도 '쿠로이키 야츠모'의 사견이 가득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그럼에도 죽지 않았으면 했다.'

大海原九

글쎄, 이걸 알게 된다고 해도 그렇네...
나로서는 네가 생각보다 섬세했다는 점이 놀랍고, 너로서는 '또냐' 싶을수도 있겠는걸? ('새해 옥상 다이브'를 눌러본다.)

黒粋奴藻

넌 정말 나를 단세포 쯤으로 보고 있었던 거야?

 

불만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음 파일을 누르면, 역시나.
텍스트의 양 자체는 직전에 봤던 히마와리 나나의 파일보다 적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혀있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뭘 싫어하는지 알면서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 좀 짜증나는데.'
'차라리 놔버리면 평생 귀찮을지도 모르는 짐 하나 사라지는 셈인가...아니, 대신 그만큼 꿈에 나오겠지.'
'목숨 그렇게 쓸거면 처음부터 눈에 띄지 말라고'
'신경쓰이게 하지 말고'
'이제 죽지 마'
...

大海原九

...
나한테만 불만 많지 않아?...
(잠시 화면을 노려보며 글을 바라본다.)

黒粋奴藻

뭐해, 왜 말이 없어?

大海原九

아무것도 아니야! (짜증내며 창을 옆으로 치우고 다시 이름없는 파일을 눌러본다.)
네가 내 일로 구구절절 앞담을 적어 놔서 그렇지. 착하게 사는 게 좋을 걸, 앞으론.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黒粋奴藻

태클 걸만한 게 한두 군데가 아닌데, 우선, '앞으로'?

大海原九

'다시 태어나시지' 라고 할 수는 없지 않니?
(그리고 우선은, 비밀번호에 '쿠로이키 야츠모'라고 적어 본다.)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창만 이치지쿠를 놀리듯이 나타납니다.

大海原九

...이제 슬슬 적당히 떠올린 거 아니야, 얏층?
비밀번호 하면 떠오르는 거, 뭔가 없니?

黒粋奴藻

...비밀번호?
아까부터 뭔가 알림 음 같은 게 들리더니, 그거였나.
복잡한 건 내가 까먹을 것 같으니까, 최대한 단순한 걸로 하지 않았을까.
숫자...라던가.
...
0000?

大海原九

... ...

黒粋奴藻

...왜, 틀렸어?

大海原九

내가 그동안 자주 단세포, 아메바니 바보니 멍청이니 했다지만... (0000 입력해본다.)
조금은 아닐 거라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불렀다고 하면 좀 내 상냥한 마음이 믿겨지려나?

黒粋奴藻

아니... 기본적으로 내 정보값에 대한 파일...같은 거 아냐? 어차피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거라면, 알기 쉬운 걸로 막아뒀을 것 같았고...

 

'얏층'의 항의는 뒤로하고, 드디어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폴더 내부에는 메모장으로 이루어진 파일이 여럿 들어있습니다. 메모의 이름은 전부 누군가의 실명으로 설정되어 있네요.
'무쿠로 씨, 금융 거래 관련으로 사기를 치고 다니는 모양. 귀찮으니 모르는 걸로 하자.'
'미츠이시 군, 그쪽의 부친이 불륜이라도 저지른 것 같다. 미츠이시 군은 진작 눈치챈 모양인데, 뭐. 필요해지면 부르겠지. 덮어두자.'
이쯤되면 용도가 짐작이 갑니다. 누군가에 관한,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채 넘어가고 싶은 정보들.
멀쩡하게... 이치지쿠의 이름이 적힌 메모도 있습니다.

大海原九

흐~음. '무쿠로 씨' 라고 기억에 있어? (본인 이름을 눌러보며 묻는다.)

 

.

黒粋奴藻

...음? 그 사람은, (짧은 침묵.) 아~있었지, 그런 사람. 돈 가지고 노는 거 좋아해서 이리저리 끼어드는 남자 있었어.
뭣, 그런 것도 적혀 있어?

大海原九

'여기'에는 말이야.

黒粋奴藻

뭐하는 파일이길래.

大海原九

이름이 없고, 비밀번호도 걸려 있고...
클리셰적으로는 '무의식'이 아닌가?

黒粋奴藻

...그래?
음... 내가 몰랐던 의식 구석탱이의 무언가를 네가 읽고 있는 거?

大海原九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黒粋奴藻

소감은?

大海原九

지금은 역시 '생각보다는 이것저것 하고 있었군' 정도려나... (달칵.)
네가 왜 청부업자가 됐는지는 알겠어, 정말이지.

黒粋奴藻

...역시 칭찬은 아니지?

大海原九

생각을 적게 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멀쩡하게 버틸 수 있는 최적해지.
'과하게 안 하려고 하는 것'은 네 직업 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말이야?

黒粋奴藻

설마, 모든 사람이 생각을 덜 한다고 이렇게 살지는 않겠지. 그랬다면 지구 인원이 반으로 줄었을 거다.

大海原九

그럼 온전히 네 문제였다는 말이네. (마우스로 화면 속의 야츠모나 한번 클릭해본다.)

黒粋奴藻

틀린 말은 아니니까? (피하려고 한 것도 같은데... '습관적으로' 선글라스 고쳐쓴다.) 뭔가 했어? 느낌은 오지만 명확하진 않거든?

大海原九

어쨌든 화면에 있으니까 마우스로 들거나 할 수 있나 싶어서. (익숙한 행동에 한쪽 눈만 찡그렸다가 턱을 괸 채 본인 이름이 붙은 항목을 열어본다.)

黒粋奴藻

그런 상호 작용이 필요해? 일방적으로 당할 뿐이잖아...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 어쩌면 우리의 지향점이 같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확인할 기분이 아니니, 일단은-'
모르는 척 하기로 하자. 뒷말은 적혀있지 않지만 예상됩니다.

大海原九

(마우스에서 손을 뗀다. 하, 같은 한숨인가 짧은 웃음인가 모를 소리만 한번 샌다.) 평생 확인 못 하게 됐겠군. (그리고 양손을 가볍게 손잡이에 걸치고 의자 등받이에 기댄다.)
어쨌든 말이야...넌 '서비스'인 셈이지? 그럼 상호작용은 되는 쪽을 대체로는 원하겠지. 안 그러니?

黒粋奴藻

원해?

大海原九

(고개 한 번 까딱인다.)
그렇다고 하면 진짜 될 거 같아서 뭔가 짜증나는걸?
필요 없어. 화면 너머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1DK 방에 갇혀있도록 해.

黒粋奴藻

그거 고문이라고 한다, 알아?
잘은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나에 대한 뭔가를 잔뜩 읽었다는 건 알겠어. 그걸로도 부족했던 모양이군.
필요하지? (필요 없다는 대답을 들었을 텐데도.)

大海原九

... 아까 내가 분명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어?
(잠깐 상체를 일으켜 굳이 마이크 입력되는 곳 가까이에 고개를 대고 말한다.) 필-요-없-다고.

黒粋奴藻

으-악. (귀 막는다.)
그럼 어디든 좋으니 내다 버려.

大海原九

(말없이 있다가 모니터 옆의 액자를 툭 건드려 넘어뜨린다.)
네가 그렇게 죽고 싶어하는 줄은 몰랐는데.

黒粋奴藻

(뭐 무너졌어...? 두리번거리다,) 확실히 하자면 이미 죽은 입장이지? 난 그런 걸 헷갈릴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서. (으쓱인다.)
어쨌든 사후 서비스...어쩌구 하는 그거잖냐? 기본적으로 내 자신의 의지가 어떻든 너한테 달린 거 아냐?
태도 정도는 정하라고.

大海原九

(한참 말이 없다.)
쓸데없을 때만 똑똑하지...

黒粋奴藻

그거 참 미안하게 됐다.

大海原九

네 미안하다는 내- (예시를 생각하듯 잠깐 조용했다가,) 하여간 그만큼 신뢰도 없으니까 됐어.
(그리고 잠시 다 식은 차를 마셨다가 내려둔다. 탁.)

黒粋奴藻

... ... (침묵.)

大海原九

이게 아쉬웠다던가,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남아있다던가, 분하다던가, 그런 감상 같은 거 하나정도도 말할 수 없니?

黒粋奴藻

말하면 이뤄주게?

大海原九

그건 들어 보고.

黒粋奴藻

귀찮으니까 한 번만 말할게, 잘 들어라?
역 앞에 끝내주게 맛있는 우동 가게가 생겼다고 들었거든, 딱히 하는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바빠서 못 가봤단 말이지. 그건 좀 아쉽고.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니 바보같은 짓이야. 불가능하고, 그거. 애초에 마지막... 작별 인사? 그런 걸 나눌 정도로 각별한 사이도 아니니까~ 그래도 어릴 적에 신세졌던 고아원 정도는 다시 가보고 싶었네...
또... 뭐?
뭐든 좋으니까 너랑 싸워서, 이긴 다음에-
하루종일 솔직하게 굴어야 한다는 벌칙 걸어보고 싶었다...같은 거?

大海原九

(이 대화는 간간이 침묵이 있다.)
(시끄럽게 말하는 인간이 입을 다물어서 그렇지. 이치지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바깥의 소음을 귀로 한번 듣는다.)
이거 들려?

黒粋奴藻

마이크 성능이 생각보다 좋은가 봐?
들려. 밖이라도 나왔냐? ...아, 창문?

大海原九

좋은 걸 샀으니까. (그럼 의미가 없군.)
cc<=60 회피 (1D100<=6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7 > 87 > 실패
(이치지쿠는 팔을 들어서 눈가로 올리고 한참 조용하다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멍청이에, 바보에, 단세포에, 기껏 생각은 할 줄 알면서 이상한 때나 떠올려서 뭐든지 늦거나 소용이 없어.
말했던가? 그럼 두 번 들어.
(그리고 외장 하드 내부의 데이터 목록을 보며 의미없이 휠을 굴린다.) 이제 넌 아무것도 못 해. 내가 뭔가 결정하지 않으면 여기서 스피커로 불평이나 내놓겠지.
내가 뭘 하든 그러다가 어떻게 되든 데이터나 흔들면서 '이런 젠장,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라고 하고 말이야. (여기서 짧게 웃는다. 하하!)
(창을 최소화한다.) 사람 정신이라는 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네가 이상해지기 전에 16번까지의 시도가 잘 먹히면 좋겠네. 반응이 좀 궁금해졌거든. (굳이 보이지 않는데도 모니터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손을 뗀다.)
캠이라도 달아 줄까? 소리만으로는 답답하지?

黒粋奴藻

... ...
오오우나바라. (굳이 이름이 아닌 성씨를 부르는 것까지, 그리운 향수가 느껴진다. 데이터에게는 아무 소용 없겠지만, 정말 그저 데이터일 뿐이라면.)
네 말대로 난 이미 늦었어. 그리고 네 말대로, 무슨 짓을 하든 나는 관여할 수 없어. 나는 늦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만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네가 그게 싫다면 그 의사를 존중하는 수밖에 없어.
말이 좋아야 존중이지, 강제인 셈이지만. 뭐 어때? 진즉 휘둘렸었고. 그치만 말이다, 사람의 정신에는 헌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이왕이면 인간으로 살자.

大海原九

이건 인간이 할 행동은 아니라고라도?

黒粋奴藻

미련하게 구는 것도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인간적이지만...
바라는게 그게 아니라는 건 알면서?

大海原九

하하... ...
꼭 내가 언제는 바라는 대로 움직였던 것처럼 말하네, '야츠모 군'.
그럼 그 안에서 내가 빨리 이런 일에 질리게 되기라도 기도하고 있어 봐.

黒粋奴藻

... 그렇게 나오시겠다...
(양 손으로 깍지 껴 제 머리를 받친다.) 캠은 알아서 해, 난 굳이 필요 없다고 보는데.
... ...아쉬운 거 하나 추가.
역시 방금 타이밍에 정수리를 한 대 쥐어박았어야 했어.

大海原九

...그러게 왜 죽었는데? (짜증내듯 말하곤 펜을 하나 가져온다. 외장 하드 위로 삑삑, 긋는 소리가 난다.)
(크게 '바보네' 라고 적어놓고 나서야 다시 뚜껑을 닫고,) 그건 내가 필요성을 느끼는 문제니까 상관없어!

黒粋奴藻

필요해한다니까, 내 말 맞았지?

大海原九

매일 밤 사이 마이크에 데스 락 틀어 줄까?

黒粋奴藻

좋아, 데이터 파업.

大海原九

시끄러워, 파업 할 수 있으면 해 보던가.

 

드러눕기라도 했는지 모니터에서 모습을 감춥니다. 데이터 주제에...

大海原九

...
(핸드폰에서 찾은 뒤 마이크에 진짜로 데스 락 틀어준다.)

黒粋奴藻

야! 고막 터지겠다! 이런 식으로 사람 두 번 죽일 일 있어?! (벌떡 일어나며 다시 나타난다.)

大海原九

(모른 척 하는 얼굴로 노래 다시 끈다.) 아차, 손이 미끄러져서...

黒粋奴藻

(먹먹한건지 한쪽 귀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16번까지 가지도 못하겠군...

大海原九

그건 내가 죽는 이야기니까 걱정 말라고. 바탕화면에 방 사진이라도 띄워 줄까?

黒粋奴藻

(미간 찌푸린다.) ...
아주 화면 꽉 채워서 부탁할게~...

大海原九

(흥, 하더니 검색창을 띄워서 '공주 방' 입력하고 엔터.)
(그럴듯한 사진을 다운받아서 화면 가득하게 띄워놓는다.)

黒粋奴藻

심술 부리는 방식은 어째 못 본 사이 변하지를 않았네... 한결같아서 좋다고 해야 해?

大海原九

(딱히 부정 안 한다.) 그렇다고 해.

黒粋奴藻

좋~네! 모니터 환하고 너무 좋다!
이왕 걸어둘 거면 네 방 사진이 낫지 않아?

大海原九

cc<=60 회피 (1D100<=6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9 > 99 > 실패
(안 어울리다 못해 현대예술 같은 이미지를 보고 킥킥 웃다가 만다.)
내가 괜찮아지면 말이야...이제 기도하고 있어.

黒粋奴藻

안 괜찮은 주제에... (턱 괴고 눈 감는다.)

大海原九

(어깨를 으쓱이곤 자리에서 일어나 원고지를 꺼낸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문제 없지, 난 언제나 안 괜찮았으니까.

黒粋奴藻

자랑이다... ... 그래도 솔직한 거 하나는 마음에 들어~.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가 괜찮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되겠지.

大海原九

(원고지 첫 장, '그는 마지막에 떠올렸다'를 첫 문장으로 한다.) '그럴 거면 아예 되살아나게 해 주세요' 라고 빌어보지 그래? 아아, 하긴 너는 이미 죽은 걸 받아들였다고 했던가.
그럼 딱히 그런 걸 원하지도 않겠고, 나도 별로 그런 걸 원하진 않아. 죽었잖아? '되살아' 나게 하면 그야말로 대체품이나 마찬가지지. 난 착각하기에는 꽤 똑똑해. 안타깝게도 너도 그정도는 똑똑한 모양이야...
좋아, 아주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점검하고 그만뒀어. 나는 결말이 당장 보이는 실험 같은 건 안 해. (만년필이 원고지 위를 가볍게 두드린다.)
기도 틀렸어, 처음부터 다시 해.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가 빨리 질리길'. 축하해, 소년. 넌 어쩌면 내 인생에서 꽤 상위권의 최악이야.

黒粋奴藻

죽고나서야 최악이라는 말을 들으니 이거,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힌다- (내내 침묵을 지키며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다, 마지막 마디를 듣고 나서야 입을 연다. 눈은 여전히 감은 채.)
-영광입니다? 이런 반응은 오히려 마이너스인가?
이왕 까인 김에 계속해볼까,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가 털어낼 수 있기를'. 이건 어때? 정정하고 싶어서 미치겠지?

大海原九

... ...좋아, 캠은 일주일 뒤에 사는 걸로 해. (이치지쿠는 꾹 누르고 있던 만년필을 떼고 젖은 원고지를 옆으로 밀어 치운다.)
'질리길' 이라고 했잖아, 마이크가 고장나서 잘못 들리기라도 했나? 아니면 회로 문제야? 지금 뇌가 네 전보다 성능은 반드시 좋을 텐데...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종이를 들어 화면을 가리듯이 붙인다.)
이걸 부술 수 없다니 불공평하기도 하지...

黒粋奴藻

(이 직사각형의 기계장치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금의 '쿠로이키 야츠모'는 절대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쪽은 눈치가 빨랐다.)
없어도 된다니까?
... ...
... 부순다면 말리지 않아.

大海原九

(이치지쿠는 손 위에서 던졌다 받았다 하며 가지고 놀던 만년필을 모니터로 집어던졌다. LED 전구 몇 개가 나간 듯 작은 점이 깜박인다.)
(어조는 상냥해진다.) 아까 한 말은 취소할게. '꽤 상위권의 최악'이 아니라, 난 네가 꽤 싫어.
선택적으로 똑똑해지는 나쁜 버릇은 아직도 못 고쳤구나. 하긴 앞으로도 고쳐지지 않겠지.
넌 죽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다시 만년필을 주워 촉이 망가졌는지 확인하고,) 정말이지 좋아할 구석이 없어, 이 세상이고 사람들이고 너고.
(잠시 생각하듯 만년필을 손가락만으로 빙글빙글 돌린다.)
하지만 너희 입장에선 성에 안 찬대도 내가 '참는 건' 분명히 어느 정도는 좋아하는 것 때문이지. 참 안타까운 일이야, 안 그러니?
내가 조금만 멍청했으면 우리 모두 이런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고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넌 어차피 살아있어도 잘 안 됐을 거야. (문득 악담이 이어진다.) 지금 말하는 거 봐, 안 그래?
그러니까 거기 얌전히 있어...

黒粋奴藻

(아무리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만년필이 모니터에 부딪히는 순간에는 뒤로 살짝 물러섰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미약한 충격이 닿았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다. 이 데이터에게 감각이 살아있는지조차, 이치지쿠는 확신할 수 없고 확인할 수 없을 테니까.)
네가 싫다고 해도 나는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네가 더 잘 알잖아?
기도도 소용이 없겠군, 생각보다 더 그리웠던 모양이지. 하하... ...
...이 순간에도 네가 날 보고 있는지, 어쩐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래도 캠은 싫다. 고개 사선으로 틀어 애먼 곳 응시한다.)
마음대로 해, 그래. 나는 여기 있어.
... ... ... 살아있었어도 잘 안됐을 거라는 말은 납득하기 어려운데... 그것도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大海原九

(가려진 채로도 빛이 새나오는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이치지쿠는 비웃듯이 소리를 냈다.) 그럼 괜찮을 가능성이라도 있었다고? ...아하하, 그럼 더 웃기는 일이지, 영화에서 그런 결말을 내도 전부 욕하면서 돌아갈 걸. '이게 대체 뭐야? 무슨 이런 영화가 다 있어? 하나도 되는 게 없잖아!' ...
(연극적인 톤은 다시 잔잔해진다.) 거짓말쟁이 녀석. 없는 주제에.
(짧게 침묵했다.) 난 그리워한 적 없어...
너는 모르겠지만.
그리워하지 않아도 사람은 없어진 걸 떠올리거나 구애되기도 하는 거야.
있지도 않은 고향, 추억, 그런 것에 그리움을 느낄수도 없으면서 느끼는 것처럼 착각하는 향수라고 하지. 근본은 그냥...
그냥 그런 걸 좋아하는 건데.

黒粋奴藻

살아있는 한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는 법이라고. 그 결과 이 꼴로 버티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이제는 바르게 서서 정면을 바라본다.)
(한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정적이 이어진다.)
...싫다는 거야, 좋다는 거야? '꽤 싫다'고 한 것 치고는. 너...
...저기. 이치지쿠.
그만 덮어둬도 될 것 같지 않냐?

大海原九

(스피커 버튼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가,) 더 말해 봐.

黒粋奴藻

언제까지 피해다닐 작정이야?

大海原九

... ...
그래서 어쩌라고?
죽고 나서 '그래, 실은 꽤 좋아했어'라니.
웃음도 안 나오는군.

黒粋奴藻

명료해졌어, 덕분에.
무의식이라고 했던가? 그런 파일이 있는 모양이지. 분명 네 얘기도 있었을 거야, 그렇지? 나는 답을 얻은 것 같은데.
...그래서, 혹시 울고 있다면 미안한데, 너무한 소리 한 번만 더 한다?
계속 나 붙잡고 있으면 너, 완전 꼴불견 되는 거 알아?

大海原九

(문득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하, 그런 말은 말이야, 야츠모 군...
꼴불견 아니었던 사람에게 해야 타격이 있지.
안 그랬던 적이 있던 것처럼 말하네. 상처받는다아?

黒粋奴藻

...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가 빨리 질리길.

大海原九

잘 했어, 굿 보이.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모든 기억이 담겨있는 기계장치와, 아무런 기억을 갖고있지 않는 사람 중에 어떤 쪽이 가장 생전과 근접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잠시나마 마주했던 감정을,
진심을 다시 곱게 포장해 기계장치라 불리는 네모난 상자 안에 넣어둡니다.
누가 무어라 하건 야츠모는 당신의 곁에, 어떤 형태로든 살아있습니다.
PC를 종료하는 대신에, 화면 보호기를 꺼둘까요.
시스템 볼륨을 높이고, 마이크의 감도를 조절해 볼까요.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이것만이 두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일 테니까요.
PC 생환, KPC 생환?
End. 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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